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일 수도 있고, 공부해야 하는 시험 범위일 수도 있으며, 정리해야 하는 집안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작이 안 된다.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5분만 쉬고 시작해야지.”
“밥 먹고 해야지.”
“유튜브 하나만 보고 해야지.”
“내일부터 진짜 해야지.”
문제는 그 5분이 30분이 되고, 30분이 2시간이 되고, 결국 하루가 지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일을 미루는 동안 편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편하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을 미루면서도 계속 불안해한다.
놀고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영화를 봐도 집중이 안 되고, 게임을 해도 개운하지 않다.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미루기의 핵심 원인은 게으름보다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일을 시작하는 순간 부담감이 느껴진다.
실수할 수도 있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자 뇌는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더 쉽고 즐거운 행동을 선택한다.
바로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다.
또는 영상을 보고, 침대에 눕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일을 미루는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행동에 가깝다.
그래서 시간이 많아져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험이 한 달 남았을 때 미루던 사람은 시험이 일주일 남아도 미루고, 심지어 하루 전까지도 미루는 경우가 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뇌가 미래의 자신을 다른 사람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하기 싫은 일을 내일의 나에게 떠넘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나는 편해지고 싶다.
반면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래의 자신에게 일을 넘긴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어떻게 될까?
어제의 미래였던 오늘의 내가 다시 같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내일로 미룬다.
결국 문제는 계속 반복된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완벽주의자는 부지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아예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고서를 쓰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완벽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미룬다.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실패가 두려워 준비만 하다가 시간을 보낸다.
결국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행동을 막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지 말고 형편없이 시작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의외로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100페이지를 목표로 하지 말고 1페이지만 읽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동을 해야 한다면 1시간 운동이 아니라 운동복만 입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인간의 뇌는 시작한 일을 끝내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사실 시작 직전인 경우가 많다.
한 번 시작하면 생각보다 쉽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서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말 내내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일요일 밤이 되면 더 피곤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피곤할까?
뇌가 계속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있고, 미루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즉 쉬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쉬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반대로 해야 할 일을 끝낸 날을 떠올려 보자.
힘들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진다.
그 이유는 뇌가 더 이상 그 부담을 들고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은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시작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도 하기 싫은 것은 똑같다.
다만 하기 싫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루기의 가장 큰 적은 일이 아니다.
시작 전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부담감이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또 “5분만 더”를 외치고 있다면 한 번만 생각해 보자.
정말 시간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시작하기 싫은 감정을 피하고 있는 것인지.
그 차이를 알게 되면 의외로 많은 일들이 훨씬 쉽게 시작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